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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서원(屛巖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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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경남 거창군 가조면 사병리 119 문화재 지정 배 향 인 물 : 변중량, 변계량 창 건 연 도 : 1707(숙종33) 중 건 연 도 향 사 일 |
연 혁
1707년(숙종 3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변중량(卞仲良)과 계량(季良) 형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변벽(卞璧)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9년(고종 6)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복원하지 못하였다.
변중량(卞仲良)
?∼1398(태조 7).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춘당(春堂).
신의위보승산원(神義衛保勝散員) 주(珠)의 증손(曾孫)이며, 증찬성사(贈贊成事) 원(原 또는 元)의 손자로,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옥란(玉蘭)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성공필의 딸이다. 대제학 계량(季良)의 형이며,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이복형인 원계(元桂)의 사위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고려 말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사를 지냈다.
1392년(공양왕 4) 이방원(李芳遠)이 이제(李齊) 등과 함께 스승인 정몽주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미리 눈치채고 이성계에게 문병가는 것을 말렸으나 정몽주는 정세를 살피기 위하여 이성계의 집에 다녀오다가 이방원의 문객 조영규(趙英珪)·고려(高呂) 등에게 살해되었다. 1394년(태조 3) 전중경(殿中卿)으로 있으면서 병조정랑 이회(李薈) 등과 함께, 정권과 병권이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에게 다 맡겨진 것은 옳지 못하다는 말을 했다가 순군옥(巡軍獄)에 갇히고 이틀 후 영해로 유배를 갔다.
1398년 우부승지·우산기상시(右散騎常寺)에 이르렀다. 이해 제1차 왕자의 난에 정도전의 일파로 몰려 참살되었다. 시에 능하였고, 거창의 병암서원(屛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춘당유고 春堂遺稿》가 있다.
변계량(1369~1430)
변계량은 조선 태종 7년(1407)에 문과급제 후 여러 벼슬에 이어 대제학을 20여년간이나 지냈다. 문장과 시에 뛰어나 많은 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