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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사( 誠久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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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암리 394번지

문화재 지정 : 2002년 12월 27일 경남 기념물 244호

배 향 인 물 : 변빈(卞贇), 변연수(卞延壽), 변립(卞 )

창 건 연 도 : 1895년

사 액 연 도

향 사 일 : 음력 3월

 

성구사는 초계 변씨 문중의 사우로서 변빈-8세, 변연수-18세과 변립-19세 세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상량문과 편액에 의하면 성구사는 1895년에 건립되었다.

성구사는 1895년 건축된 조선조 건축양식의 목조건축물로서 그 보존가치가 높다. 세 충신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우 정면에 ‘一’자 모양의 목조건물 도산서당이 있고, 도산서당 전면 좌우편에 동재인 일신재와 서재인 존양재를 두었다. 그리고 솟을대문, 내삼문, 외삼문이 배치되어 있다. 성구사의 강당에 해당되는 도산서당은 1914년에 건립되었으며, 동·서재 기능의 일신재와 존양재는 1915년에 준공되었다. 도산서당과 일신재·존양재는 건립 이후 이 지방에 근대적 학교가 설립되기까지 교육기관의 역할을 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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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19년 4월 3일 진동·진전 일대에서 항일운동이 일어났을 때(4.3 삼진의거) 성구사 일원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드는 등 거사를 모의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iq02.png 삼현(三賢)

 

변빈(卞贇)-8세손

 

고려말(高麗末) 대호군(大護軍) 휘(諱) 변경(卞卿)의 아들로 벼슬이 문하평리(門下評理) 정이품(正二品)이였다. 고려의 국운이 다함에 판서 성만용(判書 成萬庸), 박사 정몽주(博士 鄭夢周), 제학 홍재(提學 洪載), 대사성 이색(大司成 李穡), 전서 김성목(典書 金成牧), 전서 조열(典書 趙悅), 진사 이오(進士 李午), 단구 김후(丹邱 金厚) 등과 때 없이 자주 만나 술자리를 같이하며 세상을 한탄(恨歎)하고 슬픔을 달래는 시(詩)를 주고 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은(殷)나라가 망할 때를 상기하여 서로 말하기를 은(殷)나라에는 삼인(三仁)이 있었으니 비간(比干)은 왕을 간(諫)하다 죽음을 당하고, 미자(微子)는 떠나갔으며, 기자(箕子)는 종이 되었음을 비유하고 우리도 각자의 뜻에 따라 처신(處身)하자 하니 다 말하기를 좋다하고, 홍재(洪載)는 삼가(三嘉)로 돌아가고, 김후(金厚)는 상산(商山)으로 갔으며, 조열(趙悅)은 함안(咸安)으로 돌아갔다, 변빈(卞贇)선생은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숨어 지내면서 자정(自靖)하여 고려조(高麗朝)에 충절(忠節)을 지켰다.

 

고려충신 두문동(杜門洞) 72현(賢)의 한분으로서 개성(開城)의 두문동서원 표절실정절반 제이위(杜門洞書院 表節室靖節班 第二位)에 봉안(奉安)되어 있다.

 

변연수(卞延壽)-18세손

 

1538(중종33)-1592(선조25)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오원(吾元). 남룡(南龍)의 9대손이다.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일찍이 변훈남(邊勳男)에게 수학하였는데,『춘추』를 배우고 그 대의(大義)를 강론하매 그의 선생이 탄복하였다.

 

학문 뿐만 아니라 무예에도 능하여서 활쏘기와 말타기를 연마한 뒤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주부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웠으며, 옥포해전(玉浦海戰)에서 이순신(李舜臣)ㆍ김효성(金孝誠)과 함께 왜선을 격파하고 수많은 왜적을 잡아 목베어 남다른 군공(軍功)을 세웠다.이어서 당포해전(唐浦海戰)에 참전하여 아들 입(岦)과 함께 전사하매, 조정에서는 정문(旌門)을 세워 그의 공을 표창하고 병조판서를 추증하였다. 변립(卞岦 )-19세손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병조판서에 추증된 변연수(卞延壽)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옥포해전(玉浦海戰)에서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지휘아래 왜선을 격파하여 공을 세웠으나 당포해전(唐浦海戰)에서 아버지와 함께 전사하였다. 고종 때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정문(旌門)을 세우고 좌승지에 추증하였다

 

iq02.png 성구사기(誠久祠記)

성구사기(誠久祠記)는 도산서당(道山書堂)을 맡아보고 있는 학동선생 함안조공(咸安趙公) 휘(諱) 한규(翰奎:13세손: 종손세거/ 마산)와 본손 상헌(相憲)이 을미년 섣달 보름에 완산 최병심 선생에게 기문(記文)을 청하여 삼가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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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사내 변빈 유허비앞에서 변씨 31세손 변우석과 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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