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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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인(卞宗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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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자원(子元) |
시호 |
공장(恭莊) |
생년 |
1433(세종 15)~ 1500(연산군 6) |
시대 |
조선 전기 |
본관 |
초계(草溪)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부친: 변승세(卞承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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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세종(世宗) 1년(1419) 기해(己亥) 증광시(增廣試) 동진사(同進士) 11위
[생원시] 태종(太宗) 14년(141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식년생원(式年生員) 3등(三等) 44위
[상세내용]
1433년(세종 15)∼1500년(연산군 6).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자원(子元).
1460년(세조 6) 무과에 급제,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당상관이 되었다.1473년(성종 4) 오랑캐가 북변을 침범하자 조전장(助戰將)으로 공을 세워 가선대부에 오르고, 그 공으로 1478년 온성도호부사(穩城都護府使)가 되었다.1481년 공조참판을 거쳐 전라도병마절도사‧영안북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1486년 영안북도병마절도사로서 오랑캐의 침입을 방어하지 못하고 태만하였다는 이유로 장형에 처해져 변방으로 충군(充軍)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어 진향사(進香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이듬해 충청도수군절도사에 이어 공조참판‧영안남도병마절도사를 지내고, 다시 영안북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494년 지중추부사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6년(연산군 2) 평안도병마절도사에 이어 경상우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하여 전후 12회에 걸쳐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맡아 국방을 튼튼히 하는 데 공헌하였다.1498년 65세의 고령임을 들어 수군절도사직을 사임하였으나 다시 공조판서에 임명되었고, 그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옮겼으며, 지중추부사로 재직중에 죽었다. 시호는 공장(恭莊)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집필자]
박천식(朴天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