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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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변상동(卞尙東) |
|
자 |
군진(君振) |
생몰년 |
(미상) |
시대 |
조선 중기 |
본관 |
초계(草溪) |
활동분야 |
군인 > 군인 |
부 |
변옥희(卞玉希) |
조부 |
변명춘(卞命春) |
[상세내용]
생졸년 미상.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군진(君振).조부는 첨정(僉正) 변명춘(卞命春)이고, 부친은 평천(坪川) 변옥희(卞玉希)이다. 도량이 있고, 영리하였으며, 계책과 모략이 원대하였다. 나이 16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따라서 경상북도 예천의 미흘산성(彌屹南城)을 지켰는데 위기를 모면하는 등 뛰어난 지략이 많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순절하자 홀몸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지키다가 왜군(倭軍)의 화살을 맞고 왜군에 의해서 포위되었다. 이 때 변상동은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함께 죽기를 청하며 왜군들에게 크게 소리 지르며 “충신과 효자가 목숨을 아까워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왜군이 그냥 돌아가 버렸다. 이곳에 바위가 있었는데 이런 연유로 이곳의 바위를 ‘충효암(忠孝巖)’이라고 부르고 있다. 1609년(광해군 2)에는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제수되었다. 나이 60세에 죽었으며, 정려문이 내려졌다.
[참고문헌]
八系卞氏忠孝世蹟,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이은영